1. 빠르게 식어가는 성장엔진
성장엔진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고령화로 인해 인구의 잠재성장률 기여도가 크게 낮아졌고 부동산으로의 과도한 쏠림이 경제의 생산성 증가속도 둔화를 야기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분업생산과 자유무역 기조가 퇴색하고 있다. 첨단기술 패권전쟁과 지경학적 안보를 중시하는 보호무역이 전면에 등장했다.
2. 일본 경제의 구조 변화와 실패
일본은 버블붕괴 전후로 장기간의 저성장, 저물가를 낳은 부채, 인구, 기술 세 측면에서의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구조개혁만이 해결책인데, 일본 정부는 경기대응 정책에만 의존한 결과 정부 재정 여력이 소진되거나 통화정책에 제약이 걸리며 수십년간의 장기침체를 겪어야만 했다.
2.1. 부채구조 변화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자산가격 버블이 발생했고 그 결과 민간부채가 급증했다. 이에 대응해 정부와 일본은행이 동시에 긴축 스탠스로 급격히 전환하면서 1990년 버블이 붕괴했다. 일본은 버블 형성 과정에서 레버리지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거나(대응기회 1) 버블 붕괴 후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대응 기회(대응기회 2)가 있었다. 하지만 내수 부양 요구 등으로 적시에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은행과 기업의 연쇄도산이 발생한 이후에야 점진적인 구조조정(대응기회 3)을 진행하는 길을 선택했다.

적시에 관리되지 못한 자산시장발 부채 리스크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기저에서도 부문간 자원배분이 왜곡됐다. 버블경제기 일본은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업으로의 대출집중도가 상승한 반면, 상대적으로 자본생산성이 높은 제조업은 크게 하락했다. 이는 효율적 자원배분을 제약하며 경기회복을 지연시켰고 잠재성장률도 저해했다.
우리나라 민간부채도 일본 버블기와 닮아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단 부채를 사전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동산 PF 및 건설사 부실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선별을 통해 단계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2. 인구구조 변화
1990년 일본경제 버블 붕괴 시 공교롭게도 이 시기부터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 영향이 본격화됐다. 저출산과 고령화 진행으로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투입 기여도가 점차 줄어들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음(-)으로 전환됐다.
일본은 인구 감소로 인한 저성장, 저물가가 나타나고 상당기간 체감한 이후에야 노동력 확보를 위한 각종 대응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저출산·고령화는 일본경제를 장기침체에 들어서게 한 주된 요인이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큰 비용을 오랫동안 치러야 하는 만큼 우리나라도 보다 전향적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2.3. 기술구조 변화
전후(戰後) 일본은 기업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업간 거래 비용을 절감했고 선진국 대비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면서 대(對)선진국 무역수지 흑자를 지속했다. 플라자합의 이전까지 엔저가 수출에 우호적으로 작용한 데다가 인건비도 비교적 저렴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기술구조와 교역환경이 급변하면서 성장 공식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2001년 중국이 WTO 가입으로 대외 개방에 나서면서 중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구축됐다. 즉, 중간재로 중간재를 수출하고 현지에서 가공·조립하여 수출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수직계열화로 모든 공정을 관리하던 일본 기업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일본은 기존 전략을 지속하는 선택을 했다. 글로벌 수평분업체계에 제한적으로 참여했으며 GVC 참여도는 OECD 평균 참여도를 크게 하회했다. 미국·유럽으로는 시장탐색형 FDI가, 아세안으로는 비용절감형 FDI가 증가하면서 중국으로의 진출은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세계 1위를 넘보던 일본 기업의 경쟁력과 국내 생산기반은 상당 부분 약화됐고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도 지연됐다.

3.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경제는 고도성장기를 지나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부동산 발 가계부채가 우려할 수준까지 누증됐고, 한국에 수혜를 입혔던 글로벌 통상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고 중국 특수도 사라지고 있다. 일본과 같이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통화정책 운용이 제약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3.1. 부채관리
부동산 발 가계부채 누증이 우려할 수준으로 올라왔다. 사전에 단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계부채 관리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부채비율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부채가 부실화됐을 경우에는 이를 신속히 구조조정해야 한다.
3.2. 인구문제 대응
저출산과 고령화는 일본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에 들어서게 된 주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생산연령인구가, 202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우리는 유휴인력(경력단절 여성, 숙련은퇴자, 취업경험 쉬었음 청년)의 생산 참여 확대, 혁신적 교육투자 강화 등을 통해 노동력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한다. 출산율을 단계적으로 제고하려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3.3. 성장전략 전환
우리나라는 중국·IT(반도체)·수출이 주도하는 성장 공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IT(반도체)·수출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기술·교역 여건이 급변하면서 우리나라도 기존 성장전략의 유효성이 저하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중국 등 기술선도국을 중심으로 AI 산업기술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범용기술 제품의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격차를 좁혀오고 있다. 중국 특수는 약화되고 있고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던 글로벌 공급망도 자유무역의 퇴조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이 사로잡혔던 '성공의 유혹(success trap)'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존 제조업 중심의 수출 성장모델에서 탈피해 첨단산업 육성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반도체, AI 등 핵심기술이 국가전략산업으로 부각받는 가운데 인재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는 IT, 의료, 문화콘텐츠 산업 등이 포함된다.
3.4. 재정건전성 확보
일본의 경우 인구고령화로 사회보장지출이 늘어나는 구조적 적자가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경기 대응을 위한 재정여력은 빠르게 소진됐다. 일본은 소비세율 인상, 의료·연금제도 개혁을 통해 재정여력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경제위기 중첩과 국민적 반발이 겹치며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정부부채비율은 2023년 기준 50.7%로 비교적 건전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정부부채가 확대되는 경로에 들어선 상황이다. 재정여력 소진의 핵심 요인은 인구고령화에 따른 경직적 재정지출 증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금이나 의료보험 개혁이 필요하고 선제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3.5. 통화정책의 한계 인식
통화정책은 경기대응수단이지 경제 체질 개선 수단이 아니다. 잠재성장률 제고는 구조적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은 각종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의존했으나 단기적 경기부양효과만 있었을 뿐 성장잠재력을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저생산성 기업의 차입 확대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이 약화됐고 중앙은행의 과다한 국채보유가 시장유동성을 제약하게 됐다.
4. 시사점
우리나라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의해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2040년대 후반에는 0.6%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구조개혁이 성공한다면 잠재성장률 하락분 상당부분을 만회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노후화된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혁신한다면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장태윤, 김남주, 손윤석,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BOK 이슈노트》 제2025-14호, 한국은행, 2025. 6. 5.(링크)
'경제 > 한국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견조한 GDP와 치솟는 집값 상승 기대 (0) | 2025.10.28 |
|---|---|
| 10·15 부동산 대책 평가 - 보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 (1) | 2025.10.15 |
| 9·7 부동산대책 총평 (2) | 2025.09.10 |
|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시급하다 - 이준구 교수 (0) | 2025.06.23 |
|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 (11) | 2025.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