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2000년 독일에서 출간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번역된 한국어판으로, 2016년 개정증보판을 읽었다. 어린 아들 카림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2. 기아가 생기는 이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식량은 넘쳐나지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할 수단이 없다.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논리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은 자유롭게 조정되어 결국 공정한 균형에 도달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유한 국가로 자원이 집중되는 한편 가난한 나라에서는 6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린다.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과 덤핑 정책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선진국의 값싼 농산물이 아프리카 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현지 농민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난민이 된다.
반대로 수확기가 지난 후에는 세계 곡물 시장에서 사들일 수 있는 식량이 제한돼 있다. 농업연료가 농산물 가격 폭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에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수억 명이 기아 또는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죽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농업연료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다량의 곡물을 태우는 것은 반인류 범죄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부유한 나라는 자국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식량을 대량처분하거나 수출 제한을 두기도 한다. 반면 FAO나 WFP와 같은 국제기구는 예산 부족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그 결과 식량은 전 세계적으로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긴다.
기아가 단지 국제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가 내부의 부패와 불평등 역시 중요한 원인이다. 세네갈의 경우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땅콩 단작에 의존해 왔다. 농민들은 정부에게 땅콩을 헐값에 넘기고 정부가 이를 유럽에 비싸게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그 이익은 관료와 지배계급의 사치로 이어지나, 농민들은 여전히 식량 부족에 시달린다.
역사적으로 기아는 권력 유지와 사적 이익의 강화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예컨대 1970년 칠레 대통령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는 무상 분유 공급 정책을 실시했지만, 당시 칠레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는 칠레 정부와의 협력을 거부했다. 미국의 닉슨 정권이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 정책을 꺼렸기 때문이다. 결국 아옌데 정권은 미국의 뒷배를 얻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몰락하고 개혁은 실패한다. 이 사례는 식량 부족 문제가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기아의 해결책
장 지글러는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자급자족 경제 체제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비인간적 사회 구조를 뒤엎고 자립적인 경제를 세워야 한다.
그는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가 실시했던 개혁 사례를 소개한다. 상카라는 비효율적인 중앙행정을 지방자치제로 바꾸고 인두세를 폐지했으며 경작 가능한 토지를 국유화해 가정별로 재분배했다. 그 결과 농민은 안정적으로 농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상카라 집권 후 농업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부르키나파소는 4년만에 자급자족 경제로 거듭났다.
단기적으로 인도적 구호조처를 효율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개별 국가의 혁명적 개혁과 농지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고 국가가 농업 인프라(자본, 도로, 종자, 비축식량, 농업기술 등)를 확충해야 한다. 이런 투자는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며 전 세계적 연대와 여론의 압력이 필요하다.
지글러는 현 체제의 근본적 한계로 신자유주의의 시장 만능주의를 지적한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공정이 실현된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생명은 이윤의 논리로 맡겨둘 수 없으며 인류는 모든 사람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도록 국제적 구조와 규범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4. 총평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현실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기아 보고서를 넘어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어떻게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이 곧 정의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부국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논리일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념이 어떻게 제3세계의 노동과 자원을 착취하며 굶주림을 경제의 부작용으로 포장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검증되지도 않은 채 그들의 학문적 활동을 자연법칙화한다.
멜서스적 시각으로 보자면, 기근은 인구 조절의 자연적 수단이다. 이 시각은 틀렸을 뿐더러 유럽, 백인우월주의적인 시각이다. 굶주림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불의의 산물이며, 부국의 이기심과 식민지 유산이 초래한 결과다.
지글러는 구호단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분석한다. 구호가 때로는 전쟁을 연장시키고 부패한 정권을 유지시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원조는 멈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명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그 부작용과 비견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서 기아는 생산의 부족이 아니라 분배의 불공평함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불공정한 자원 배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제기구의 개혁뿐 아니라 각국 내부의 정치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기아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류가 만든 재앙이므로 인류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이 책은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얼마나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지글러는 여러 사례를 통해 기아는 숙명이 아니라 살인이라고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마음 한 켠에 무거운 책임감이 남는다. 기아는 나와 무관한 세계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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