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에 대하여
아마티아 센은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다루는 후생경제학 분야의 대가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 책에서 GDP 성장을 경제발전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비판하며, '발전이란 실질적 자유의 확장'이라는 명제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2. 발전이란 무엇인가
센은 발전이란 인간의 자유가 증진되는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단순한 거래의 자유를 넘어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자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자유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따라서 발전은 국민총생산 증가나 산업화 같은 협소한 목표를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누릴 수 있는 실질적 자유의 확대로 이해해야 한다.
자유는 발전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발전의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economic facilities; 경제적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개인들이 누리는 기회), 사회적 기회 보장(교육, 보건 등 제도의 활용 가능성), 투명성과 신뢰 향상, 사회적 안전망 등이 그 예다.
3. 자유와 정의론
센은 공리주의, 롤스의 정의론, 자유지상주의가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서 각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리주의는 총효용에만 집중해 개인의 권리, 삶의 질, 분배 문제를 간과한다. 롤스가 주장한 기초 재화 분배는 복지와 자유 확장에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자유지상주의는 규칙만을 중시해 실질적 자유의 중요성을 놓친다고 비판한다.
센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개인의 역량(capability)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역량은 다양한 삶의 양식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한다. 사람마다 효용을 정확히 측정하거나 비교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신 개인이 선택 가능한 기능 조합(역량집합)을 비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4. 정의란 부자유를 제거하는 것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처럼, 선택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센은 이 점을 인정하며 절대적으로 정의로운 선택지는 고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캐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와도 연결된다. 다만 센은 정보를 확장함으로써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센은 모든 정책에 대해 완전한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도 용인 가능한 선택은 추려낼 수 있고, 반대로 용인 불가능한 선택은 제거할 수 있다. 광범위한 기근, 불필요한 사망, 빈곤, 여성 차별 등 명백한 부정의를 해소해 나가는 것이 정의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5. 광의의 경제적 불평등
경제적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의 실질적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득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개인의 이질성, 환경의 차이, 사회적 풍토 등 여러 우연적 요인이 소득을 기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센은 경제적 불평등을 이런 광범위한 요소까지 포함하여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6. 민주주의의 중요성
센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 발전이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권위주의적 억압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근거는 없다.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경쟁에 대한 개방성, 국제시장 활용, 높은 수준의 교육, 투자와 수출에 대한 인센티브 등에 힘입어 이뤄졌다. 이러한 요인들은 민주주의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 발전에서 정치적 자유는 강력한 도구적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 정책의 질을 높이고 시민의 역량 확장을 통해 경제 발전을 자극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제도는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7. 인적역량의 중요성
센은 인적자본과 인적역량을 구분한다. 경제학에서의 인적자본이라는 개념은 생산량을 늘리는 수단으로서 인간을 바라본다. 반면 인적역량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길 만한 삶을 실제로 영위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에 주목한다.
인적자본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성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역량의 관점은 인간을 생산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8.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오해
시장은 시장이 제공하는 기회가 합리적으로 분배될 때 비로소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시장의 효율성을 평가할 때는 단순 효용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 이때 기초 교육, 보건, 토지개혁 등 공공정책은 개인의 자유 확대에 필수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기반은 사회적 기회를 창출하고 인간 역량 확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센은 인간이 항상 이기적이라는 가정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뢰와 거래의 투명성, 정직함을 포함한 복잡하고 정교한 가치체계가 필요하며,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도덕성과 행동윤리를 전제로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의무와 윤리를 고려하는 존재이며, 이는 이성적 판단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9.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
센은 애덤 스미스를 폭넓게 인용한다. 그리고 그동안 스미스의 사상이 후대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와전되어 온 현실을 개탄한다. 후대 경제학자들은 스미스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스미스의 주장을 왜곡해 왔다. 스미스의 '정육점 주인' 비유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이 맥락과 무관하게 인용된 결과다.
그러나 스미스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부유층의 부패, 담합, 탈세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도울 뿐이라고 했다. 또 국가의 합리적 개입도 긍정했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윤리적 고려를 행하는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인간을 오직 생산적인 활용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인간성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센은 이러한 스미스의 관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10. 후기
《자유로서의 발전》은 주류경제학의 기존 방법론을 넘어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한 저작이다. 이 책이 1999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여전히 효용 함수와 협소한 성장 중심 관점이 경제학 교육의 주류라는 점에서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비록 센의 접근이 모델 구축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가 제시한 개념과 시야 확장은 경제학자뿐 아니라 현실 정치인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
센은 가치 판단의 기준을 효용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다. 한 끼를 건너뛰는 행위도 밥이 없어서 굶는 것과 건강을 위해 단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센은 이러한 실질적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바로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 '자유로서의 발전'인 이유다.
해제에서 유종일 교수는 센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평한다. 물론 이때의 자유란, 단순히 행동이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의미한다. 모든 이가 가급적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사회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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