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제

오카자키 데쓰지,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2016

econtopia 2025. 12. 15. 20:25

1. 총평

이 책은 전 세계의 경제사 연구동향을 조망하고 있다. 특히 신제도학파 경제학의 시각을 반영하여 경제성장의 원인을 제도와 조직에서 찾고자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각 장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경제학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시작되며, 제시된 답이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취한다. 이러한 꼬리물기식 전개 덕분에 질문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논의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2. 경제성장의 메커니즘

첫 번째 장에서는 경제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개관한다. 1인당 GDP가 장기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을 경제성장이론이라고 한다. 그 기본 틀로는 1950년대에 로버트 솔로가 확립한 신고전파 성장이론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솔로 모형에서 생산량은 자본스톡, 노동력, 기술진보의 함수로 표현되며, 안정 상태에서 노동자 1인당 생산의 성장률은 기술진보율과 일치한다.

 

그레고리 맨큐, 데이비드 로머, 데이비드 웨일은 솔로 모형에 인적자본을 도입했다. 이들의 실증분석 결과는 예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물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높은 국가일수록, 인구성장률이 낮은 국가일수록,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1인당 GDP가 높다는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물론 초기시점의 기술수준이나 기술진보율과 같이 솔로 모형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존재하고, 기본적인 파라미터들(물적자본과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율)의 내생성 문제도 잔존한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이론은 경제성장의 큰 그림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3. 경제성장의 메커니즘은 시간에 따라 변할까

경제발전단계론은 경제발전의 메커니즘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변해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경제발전단계론은 19세기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에게 강조되었고, 이후 마르크스에 의해 계승되었다. 마르크스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생산력, 즉 기술수준의 상승에서 찾았다. 마르크스는 특정한 수준의 생산력에는 그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산력과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의 조합을 마르크스는 생산양식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생산력이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면 기존 생산관계가 오히려 생산력 증가를 제약하게 된다. 이 마찰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기존 생산관계는 파괴되고 새로운 생산관계로 이행한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생산양식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관계인 하부구조가 정치, 종교, 사회와 같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는 유물사관을 제창했다. 

 

한편 막스 베버는 왜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이 먼저 발생했는지를 탐구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16세기 종교혁명으로 생겨난 칼뱅파 프로테스탄트의 경제윤리가 경제발전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경제가 종교를 결정한다고 본 마르크스와 달리, 종교가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시각과 크게 달랐다.

 

베커와 뵈스만은 2009년 경제발전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인관관계를 실증적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종파별 인구 비율의 내생성을 고려하고서라도 베버의 가설은 지지되었다. 베커 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로테스탄티즘이 경제발전을 촉진한 메커니즘도 분석했다. 베버는 직업 태도와 관련한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그 채널이라고 생각했으나, 베커 등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티즘이 사람들에게 읽고 쓰는 능력을 요구한 점이 교육의 확산과 인적자본 형성으로 이어져 경제발전을 촉진했다.

 

베버의 이론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비경제적 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를 경시한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경제가 일련의 발전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치면서 발전해나간다고 하는 발전단계론 그 자체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알렉산더 거센크론이 1960년대에 처음 제기한 경제적 후진성 가설이다. 거센크론은 후진국의  발전 경로가 선진국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논의는 국가별로 조직과 제도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4. 제도가 어떻게 경제발전을 촉진하는가

더글러스 노스와 로버스 토머스는 1970년대 초 출간된 《서구세계의 성장: 새로운 경제사》에서 기존의 경제성장이론이나 경제발전단계론을 비판했다. 기술발전, 규모의 경제, 교육, 자본축적 등은 경제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성장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서유럽의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을 '효율적인 경제조직'에서 찾았다.

 

노스와 토머스가 말하는 효율적인 경제조직이란 거래비용을 절감해 개인적인 편익과 사회적인 편익을 최대한 일치시키는 제반 제도를 의미한다. 이들의 논의는 거래비용의 경제학(Transaction Cost Economics)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 16~18세기 서유럽에서 국가에 의한 소유권 보호가 거래비용을 크게 낮췄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유권의 보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상호 간 거래에서 당사자 간 계약 집행이 보장된다는 점이고, 둘째, 국가가 자의적으로 시민의 재산을 빼앗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건이 최초로 제도화된 곳이 네덜란드와 영국이었으며, 이들 지역에서 가장 먼저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해졌다.

 

노스는 정치학자 베리 웨인가스트와 함께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의 사례로 소유권 보호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이들의 논점은 경제성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소유권 보호를 커미트(commit, 약속하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퇴위하면서 의회가 명실상부한 국가의 최고기관이 되었고 국왕이 함부로 국민의 재산을 수탈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국채 이자율은 현저하게 하락했으며 증권시장은 확대되고 은행 수도 증가했다.

 

이 외에도 많은 실증연구에 의해서 경제발전에서 제도가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은 오늘날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런 아세모글루의 연구가 대표적인데, 구미 제국에 의한 식민지 정책에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사유재산 보호의 정도가 1인당 GDP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설명변수인 사유재산 보호 정도의 내생성 문제를 유럽인 정주자의 사망률이라는 도구변수로 해결했다는 점이 인상깊다.

 

거래비용의 경제학은 마르크스가 고려하지 않은 인센티브 문제나, 다양한 사회제도의 영향을 무시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를 보완했다. 하지만 특정한 거래관리제도가 왜 유효하게 기능하게 되는지 분석하지는 못한다. 즉, 왜 사람들은 그 제도를 따르는 건지에 대해서는 분석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애브너 그라이프가 제창한 비교제도분석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5. 11세기 시장경제는 어떻게 다시 부활했나

20세기 벨기에의 역사학자 앙리 피렌에 따르면 7~8세기에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고대 이래 지속되어온 상업 및 시장경제는 쇠퇴했고, 이후 300~400년에 걸친 자급자족 사회를 거친 후, 11세기 이르러 다시 한 번 상업이 부활했다. 11세기에 지중해와 발트해의 상업이 거의 동시에 부활했고, 이에 자극받아 두 개의 무역권을 잇는 육상 루트가 발달했다. 육상 루트가 발달하면서 상파뉴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었다. 

 

애브너 그라이프는 11세기 지중해 상업의 부활 배경으로 국가가 아닌 사적 제도에 의한 계약 집행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그는 11세기 지중해 무역을 담당하고 있었던 마그리비라고 불리는 상인집단에 관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사적인 제도에 의한 계약집행보호의 메커니즘을 이론적 모델로 표현했다.

 

마그리비는 원격지 무역에서 대리인을 고용했다. 대리인에게 자금과 상품을 위탁하고 있었는데 이 원격지의 상인을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그리비 상인은 대리인의 부정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결탁(coalition)을 조직했다. 마그리비 상인은 대리인을 계속 고용하되, 부정한 행위를 했을 경우 해고한다. 이때 다른 상인들도 부정한 행위를 한 대리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즉, 결탁을 맺고 있는 구성원 모두는 부정한 행위를 징벌하는 것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라이프는 이러한 행동양식을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모델화하고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서 다각적 징벌전략이 게임의 균형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때 대리인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경력이 결탁을 맺고 있는 구성원들 간에 주지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탁 내부에서 정보 네트워크의 존재가 다각적 징벌전략의 기능을 위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국가에 의한 계약집행이 존재하지 않았던 11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원격지 무역을 담당하는 일이 가능했다.

 

6. 산업혁명의 제도적 배경

산업혁명은 공장제가 공업생산의 핵심 형태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Great Divergence)' 논쟁은 18세기 말까지 서유럽과 중국의 1인당 소득이 동등했으나 19세기 이후 급격한 격차가 발생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서유럽에서 연료 전환과 해외 자원 활용을 통해 성장의 제약조건이 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스티븐 마그린은 1970년대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래디컬 이코노믹스' 학파의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다. 마그린은 〈보스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What Do Bosses Do?)〉라는 논문을 발표해 경제사학자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공장제가 노동자에 대한 규율과 감독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고 보았으며, 기술 자체도 이러한 위계적 조직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스 란데스는 경영자의 역할이 노동자를 규율하고 감독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마그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제시했다. 경영자의 이윤의 원천이 노동자의 '착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이나 기술 등 다른 요인에도 있다는 것이다. 또 올리버 윌리엄슨은 거래비용의 경제학에 대한 책 《자본주의 경제제도》에서 공장의 규율과 감독에 관한 기능을 거래비용 절감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노동자에 의한 태업, 원재료의 횡령, 생산품의 품질저하 등은 노동거래와 관련한 거래비용이고, 그것을 절감하는 장치로서 위계적 구조에 바탕을 둔 규율과 감독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알프레드 챈들러는 19세기 후반 이후 철도의 발전을 계기로 등장한 대기업 조직에서 경영자의 '보이는 손'이 자원배분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았다. 철도는 광활한 미국의 영토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고 대량유통·대량생산의 조건을 형성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 말 이후 대기업 경영진들은 누가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결정하는 코디네이션과, 경제주체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는 모티베이션 기능의 큰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7. 20세기 말 들어 수직통합이 시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말 이후 진척되어 온 수직통합은 20세기 말 들어 점차 해체되었다. 이는 거래비용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초기에는 유통 인프라가 미비하고 자산특수성이 높아 거래비용이 컸기 때문에 기업 내부화가 유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유통기업이 전문성과 규모를 갖추면서 시장거래의 비용은 낮아졌다.

 

반면 조직 내부의 거래는 인센티브 저하와 같은 고유한 비용을 수반한다. 보고와 업적평가와 같은 장치가 이를 보완했지만 시장거래가 효율적인 환경에서는 오히려 내부거래가 비효율의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많은 통합기업이 해체되었다.

 

8. 왜 남부 주는 노예제를 고집했을까

미국 남부주에서 노예제를 찬성한 이유는 노예제가 노예주에게 상당한 경제적 편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노예농장은 자유농민의 농장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보였는데, 이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강한 처벌 인센티브를 통해 태만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특히 목화와 옥수수처럼 단순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는 작물 재배에서 이러한 제도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9. 금융거래의 거버넌스

금융 시스템의 핵심 기능은 자금의 중개이며, 이를 위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역선택의 문제와 모럴 해저드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19세기 전반기 뉴잉글랜드의 은행들은 혈연과 관계 네트워크에 기반한 관계금융을 통해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했다.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 경영자, 지배적 주주 간에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해결될 필요가 있다. 대공황기에 도입된 기업의 정보 공시에 관한 공적규제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는 기능을 했다. 브래드포드 디롱은 이에 더해 사적 조직에 의한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20세기 초 투자은행이 기업 이사회에 참여해 경영자를 감시하고, 그 자체로 시장에 신호를 보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평판 메커니즘에 의해 지탱된 사적 거버넌스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