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제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1899

econtopia 2025. 11. 21. 00:39

1. 유한계급의 유래

소스타인 베블런은 생존에 필요한 수준을 넘는 소득을 가진 사람은 남는 자금을 유익한 용도에 사용하는 대신 과시하려는 욕망이 강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소비 행태를 '과시적 소비'라고 부르고, 이를 실천하는 집단을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고 불렀다.

 

유한계급의 뿌리는 정착·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긴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잉여 생산물은 약탈의 대상이 됐고 다른 집단의 잉여 생산물을 빼앗아 명예를 얻는 약탈적 문화가 형성됐다. 이때 명예는 곧 우월적 힘의 과시를 의미했다. 이후 소유권이 제도화되면서 부의 축적은 사회적 명성과 집단 내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됐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 유한계급의 지위를 차지했다.

 

2.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베블런이 보기에 유한계급은 생산적 노동을 본능적으로 기피한다.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 삶 자체가 '나는 노동하지 않아도 되고 흠결 없는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는 신분적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노동은 힘의 열등함을 나타내는 표시로 전락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일솜씨 본능'이 부각되자 낭비적 소비는 지속되기 어려워졌다. 생산직 노동의 불용과 낭비적인 소비를 싫어하는 일솜씨 본능 사이에서 나온 타협은 겉꾸밈으로 구체화됐다. 공손한 예절, 의례적 성격의 사회적 의무 등이 그 상징적 소비로 변형됐다.

 

유한계급에게 과시적 소비는 명성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도 실제 기능이나 미적 가치가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 자체가 그 제품의 지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고가 의복, 명품차, 강남의 아파트 등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구조로 작동한다.

 

여기서 낭비적 소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소비가 인간의 생활이나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 개인 소비자 입장에서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낭비적 소비를 하는 유한계급은 그 자체로 품위와 명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3. 유한계급과 제도 변화

제도는 환경에 대한 사회적 적응 과정에서 형성되지만 한 번 형성된 제도는 과거의 습관을 반영하는 만큼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성은 사회를 보수적으로 만든다. 특히 기득권층인 유한계급은 혁신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사회 진보와 혁신에 대해 사회 구조를 뒤흔드는 행위라면서 비난한다. 그것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한계급의 진화에 대한 본능 억제는 금전적 경쟁과 신분제에 의한 지배로 잘 드러난다. 유한계급은 금융 제도를 포함한 여러 제도를 통해 부의 축적과 소유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고착시켜 왔다. 베블런은 금융을 약탈의 현대적 형태라고 비유한다.

 

또한 신분제의 정당화는 신인동형론적 사고, 즉 인간의 속성을 신에게 투영해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공고해졌다. 베블런은 빈곤층 역시 과도한 노동과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사고의 여유가 없어 진보를 멀리한다고 주장한다. 유한계급은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가난한 사람을 더 많이 착취해 그들이 사회적 진보를 이룰 힘을 빼앗는다.

 

반면 산업사회는 효율성을 중시하므로 과시적 낭비나 하위계급에 대한 착취를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핵심 갈등은 산업계급과 유한계급 사이에 벌어지는 충돌로 요약할 수 있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공장을 매개로 한 진화 순응적인 산업계급과 대조시키며 진화를 가로막는 유한계급의 가치 체계는 극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4. 시사점

베블런의 통찰은 100년이 넘었지만 유효한 지점이 있다. 인간 본성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사회 제도와 환경에 따라 어떤 본능이 더 강하게 드러날지가 달라질 뿐이다. 오늘날에도 부와 지위, 소비의 연결 구조는 그대로이며, 그 대표적 예가 '강남 아파트'의 상징성이다. 다른 지역의 아파트와 실질적 차별성이 크지 않음에도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강남 아파트를 선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금전 중심의 가치 체계는 자원 배분의 왜곡, 낭비, 산업적 비효율을 초래한다. 유한계급이 변화에 저항하면 제도의 발전이 지체되고 사회 전체의 문화·경제적 진보가 저해된다. 과시적 소비가 저축과 생산적 투자 여력을 감소시키는 점도 문제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결국 '우리는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회를 운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대 사회는 금전적 경쟁보다 산업과 기술, 효율이라는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며, 이를 저해하는 과시적 낭비 구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