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트럼프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협상은 미국과 러시아의 일방적인 협상에 그칠 뿐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근접한 유럽 국가의 참여가 제한됐다. 트럼프는 최대한 빨리 종전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데에 전념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무산시키고 발트해 연안 국가의 안전 보장을 철회하는 안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평화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안도 포함될 수 있다.
한편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게 종전 합의를 압박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가로 광물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해 결국 광물협정이 결렬됐다. 우크라이나는 연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종전 협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
케인스는 자신의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1919)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협상 결과인 베르사유 조약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승전국은 패전국인 독일이 감당할 수 없는 징벌적인 배상을 요구했다. 연합국의 독일에 대한 처벌 욕구의 표출은 향후 몇십 년간 유럽의 사회·정치적 안정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케인스의 경고는 정확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0년 동안 경제적 불안정에 시달려야 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함에 따라 경제는 침체를 겪고 정부 신뢰는 붕괴됐다. 대중의 분노는 커졌고 히틀러의 등장과 함게 나치 독일이 수립됐다. 그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교훈은 잊지 말아야 한다.
3. 트럼프의 실책
그런데 지금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진행하면서 당시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에는 침략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처벌을 받는 정도이다. 나토는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 지원을 했다. 나토가 버티는 한 미국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압박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러시아의 양보를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원하는 것을 주는 데에 전념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만의 문제이다. 트럼프는 단지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우크라이나에 3,000억 달러 넘게 지원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트럼프의 3,000억 달러 주장은 과장됐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책정된 금액은 1,828억 달러다). 종전 이후 평화 유지 작전은 유럽 군대로만 구성되어야 하고 미국은 이 일에서 손을 뗄 방침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에서의 이권은 차지하고서 말이다.
이러한 시각은 전 세계 안보 측면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미국이 유럽에서 손을 떼고 나간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유럽의 지정학적 불안과 유럽 민주주의 국가의 재정 부담은 한층 커진다. 유럽은 기후변화, 고령화, 혁신 촉진 등 시급한 과제에 대한 해결책에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정학적 불안이 커질 경우 방위비 부담이 높아진다. 군사적 지출이 늘면 늘수록 보다 효율적인 사업에 들어가는 지출이 줄어듦으로 성장 동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유럽 지역의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정치적 리더십이 허약한 상황에서 몇몇 EU 국가는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AEU는 중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을 하고 있으며 협력 속 값싼 에너지와 상품의 교역이 이뤄진다. 단일하고 통합된 시장에서의 자유무역은 이제 사라지고 경제 블록별로 파편화되어 교역이 이어지는 양상이 나타나게 될 시기가 머지 않은 것 같다.
유럽 경제의 몰락은 전 세계 안보에 심각한 타격이 생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논리는 베르샤유 조약만큼이나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권 상실과 유럽 불안정을 시작으로 100년 전과 비슷한 재앙이 펼쳐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4. 두 가지의 길
우크라이나 평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실현된다. 첫번째로 비시(Vichy) 스타일의 항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항복한 정권을 비시 프랑스라고 부른다. 1940년에서 1944년 프랑스는 평화로웠다. 비시 정권은 독일군의 보호를 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러시아는 아마도 비시 스타일의 평화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민간인 대상 처형, 강간, 기타 잔학행위 등이 온라인상에 많이 퍼져 있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복속해서 평화가 찾아온다고 해서 그것이 우크라이나인에게도 진정한 평화일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결말은 한국 스타일의 평화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선을 받아들임으로써 평화가 보장됐다. 국경선 근처에는 큰 규모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미군 28,000명이 한국에 주둔해 있다. 각각의 분단국가에서 각자의 체제가 공고화됐고 평화가 유지됐다.
우크라이나는 한국 모델을 휴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현재의 전선을 동결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서방 군대가 우크라이나 영토에 주둔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정부는 작년 2월부터 이 방식을 제안하고 나섰으며 현재 EU 내에서는 이 해결책이 주류가 되어 있다.
5. 진정한 평화의 길
유럽의 역할이 중요하다. 2014년 민스크 협정의 교훈을 다시 새겨야 한다. 민스크 협정 이후의 일시적인 휴전은 러시아가 재무장하고 다시 침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러시아는 계속되는 도발을 통해 나토의 방어력의 한계를 시험할 것이다. 상황이 심화되면 핵 보유국끼리의 분쟁까지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의 당면 과제는 트럼프의 일방적 합의 추구를 물리치고 전쟁 가능성을 높이지 않도록 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다면 러시아는 영토가 확장되는 효과를 얻는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군대뿐만 아니라 점령지의 새로운 인구, 방어시설, 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 자원에는 희토류부터 가스 및 원자력 발전소까지 포함된다. 만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편이 되어 싸운다면 유럽은 이를 방어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 이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한 말이다.
6. 우크라이나 평화의 경제적 결과
만약 트럼프의 구상대로 우크라이나의 평화가 진행된다면 세계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강달러라는 무기를 얻었다. 이는 미국의 엄청난 특권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를 처벌하고 협상에서 나토를 배제하는 것은 정반대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의 신뢰가 저하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 투자자들은 달러의 대안을 찾을 것이다.
달러 수요가 낮아지면 미국 정부와 기업의 차입비용이 오른다. 미국 성장이 저하될 경우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한층 더 강화하고 물가 안정보다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다. 높아진 차입비용과 약화된 성장 사이의 악순화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더욱 악화시킨다. 케인스 시기 영국은 이와 비슷한 일을 겪으며 전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미국에게 내어주었다. 미국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달러가 약화될 경우 중국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케인스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베르사유 조약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참고:
'경제 > 국제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법원에서 제동 걸린 트럼프의 상호관세 (0) | 2025.05.29 |
|---|---|
| 트럼프의 상호관세 내용과 시사점 (0) | 2025.04.03 |
| 세계 금괴 대이동과 금본위제 복귀 주장 (0) | 2025.02.04 |
| 2. 1. 미국 관세 부과에 대한 각국의 보복 조치 (0) | 2025.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