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3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진되던 헌법 개정 국민투표는 결국 무산됐다. 국민의힘은 어제 개헌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표 불성립을 유도했고 오늘은 민생법안 50건에 대한 필리버스터까지 예고하면서 개헌안 상정 자체를 가로막았다. 최소한의 책임 있는 토론과 표결조차 회피한 채 절차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개헌을 좌초시킨 것이다.

황당한 것은 그들에게 개헌을 가로막을 명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개헌안에는 5·18 민주항쟁과 부마 민주항쟁의 정신을 전문에 수록하고, 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하며, 국가 균형발전 의무를 명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느 하나 시대를 거스르는 의제가 아니었다. 비쟁점 사안으로 구성된 데다가 여야가 오랜 시간 공감대를 형성해 온 최소한의 개헌 과제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끝내 이를 막아섰다. 이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끝까지 가로막겠다는 퇴행적 정치에 가깝다. 지방분권을 말하면서 정작 국가 균형발전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반대하고, 5·18 정신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헌법 전문 수록에는 등을 돌리는 모습은 위선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그저 표를 받기 위해 꺼내 드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러한 가운데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당의 속내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안 의원은 이번 개헌안을 두고 "지방선거 투표율 상승을 위한 호객용 국민투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율 상승을 문제 삼는 정치세력이 과연 정상적인 민주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많은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태도 속에는 지방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의 초조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개헌 무산은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어떤 방향의 정치를 해왔고 앞으로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다시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사회적 합의와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끌기는커녕, 늘 개혁을 지현시키고 역사의 변화를 가로막아 온 정치세력이라는 인상만 더욱 굳혔다. 이제는 정말 묻게 된다. 국민의힘이 대한민국 정치에 과연 필요한 정당인지 말이다.

참고:
- 서혜림, 〈39년만의 개헌 시도 무위로…6·3 지선 때 개헌안 투표 무산〉, 《연합뉴스》, 2026. 5. 8.(링크)
- 권상재, 〈안철수 "지선 직전, 일방적 개헌 반대…與 투표 높이기 위한 호객용 국민투표〉, 《대전일보》, 2026. 5. 7.(링크)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으로 이끌었는가 (0) | 2026.04.10 |
|---|---|
| 이란에서 민주주의는 달성할 수 있을까? (0) | 2026.03.04 |
| 미 연방대법원의 관세 판결문 분석 (0) | 2026.02.26 |
| 내란 단죄가 아니라 내란 이해가 담긴 윤석열 내란 1심 판결 (0) | 2026.02.19 |
| 집값과의 전면전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0) | 2026.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