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이 책의 원제는 "The origins of the Modern Wolrd"이고 저자인 Robert. B. Marks는 역사학 교수로 학부생을 대상으로는 근대 세게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장악해 온 동양이 어떻게 불과 2백 년 사이에 서양에게 역전당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2. 총평
저자는 소위 '서구의 부상(the rise of the West)'이라는 견해를 부정한다. 서구가 다른 문명보다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흑사병, 설탕, 흑인 노예, 은, 아편, 총, 화석연료 등 우연적·구조적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는 것이다. 서구의 성공은 문화적 우월성보다는 자연환경과 에너지 접근성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현재의 세계 질서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불과 100년 전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패권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현 상태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연장선 위에서 미래를 성찰하고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모색하는 일일 것이다.
3. 아시아의 성장과 유럽의 내분
14세기 세계는 다중심적(polycentric) 체제였다. 당시 세계에는 고도로 발달된 15개의 문명이 존재했으며 각 문명은 독립적인 지역 체제(regional system)를 형성하면서도 무역망을 통해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었다. 고도로 발달된 중심부(본국)와 거의 발달되지 않은 주변부(식민지)로 이루어진 세계적 체제(global system)는 1800년대 후반까지 유지되었다.
이 시기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에 의존해 살아갔다. 인구는 자연환경을 위협할 정도로 증가하지 않았고 인구가 늘어날 경우 병원균이 인구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300년대 중반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죽게 한 흑사병이 이러한 조절 메커니즘의 대표적 사례다. 이렇게 인간의 경제 활동과 생활 양식이 자연의 제약 속에 머물러 있던 체제를 '생물학적 앙시앵레짐(구제도)'이라고 부른다.
15세기 인도양은 세계의 무역 체제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부의 근원지였다. 그러나 유럽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무역로 접근이 차단된 상태였다. 포르투갈은 이를 우회하고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아시아와 직접 교역할 수 있는 항로를 개척했고, 1515년 인도양의 주요 무역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유지되던 인도양의 평화로운 항해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1500년대에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가 최초로 연결되며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제국은 가장 보편적인 정치 형태로 등장했지만, 유럽에서는 단일 제국이 성립하지 못하고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반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는 세계경제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경제 성장과 생산성은 유럽을 뛰어넘었고 1500년부터 1800년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은 가운데 4분의 3가량은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대규모 은 매장을 이용해 유럽 전역을 통일된 제국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패전을 거듭하며 야심을 포기했다. 16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주로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권 경쟁을 벌였고, 7년 전쟁 이후 영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다. 다만 1700년대 중반까지도 아시아 무역을 장악한 중국과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4. 왜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영국은 애당초 170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로부터 면직물을 수입하는 국가였으나 식민지를 개척해 자국 면직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식민지의 노예제도, 중상주의, 미국 남부의 목화 플랜테이션은 영국 면직물의 대규모 수출 시장을 형성했고, 맨체스터 면직물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촉진했다.
더 나아가 영국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을 발명함으로써 면직물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증기기관은 극도로 비효율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지리적 특성상 사실상 무제한으로 석탄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은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중국은 농업 생산성, 산업 및 시장의 다양화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된 시장 경제는 산업적 혁명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중국 농민들은 작물 생산에 있어서 자유로웠고 그것이 자급자족형 원시적 산업화를 확산시켰다. 그것은 중국 핵심 지역에서 면직물 산업의 산업화를 저해했고 결국 산업 혁명이 아닌 노동집약적 농업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저자는 중국과 영국 모두 토지 부족이라는 공통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석탄이나 식민지가 없었던 중국은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량을 증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과 자본을 토지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영국은 신세계의 방대한 자원과 국내에 매장된 석탄을 활용함으로써 그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인도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석탄이나 식민지가 없었던 것뿐이다.
5. 동양은 어떻게 서구에게 역전을 당했는가
1800년대 초반부터 나타난 서구의 부상은 단순히 시장 경제의 성립 여부로 설명할 수 없다. 유럽은 그저 엄청난 양의 에너지(사탕수수, 목화, 목재, 대구 등)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식민지를 보유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영국은 산림자원이 고갈된 이후에도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석탄이 인근에 매장되어 있었다.
영국은 중국에게 아편을 수출하고 인도의 산업 구조를 농업 중심으로 전락시켰다. 중국으로 들어간 신세계의 은은 아편으로 인해 흐름이 반전되며 다시금 영국으로 유입됐다. 역사학자 칼 트로키는 "만약 아편이 없었다면, 아마도 대영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까지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들 국가는 막강한 군대를 바탕으로 산업화를 이뤄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과 민족주의 사상이 등장했다. 근대 국가란 귀족이 아니라 관료에 의해 통치되며,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주입함으로써 충성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배타성과 경쟁을 낳았고 결국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서구의 주도권 상실의 원인이 되었다. 그 당시 유럽 열강은 직간접적으로 전 세계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 동원되었다.
6. 20세기 이후와 현대적 함의
20세기에는 합성비료의 사용으로 식량 공급이 증대되면서 세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난 인류 역사의 대이탈(great departure)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환경 파괴라는 대가를 동반했다. 벌목과 농장의 확장은 열대우림을 황폐화시켰고, 수많은 생물종을 멸종시켰다. 역사학자 마이클 윌리엄스는 이를 '대공세(The Great Onslaught)'라고 불렀다.
현재 세계는 매우 심각한 두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급격히 증가하는 세계 인구에게 적절한 생활수준을 제공하는 것이고 둘째는 20세기 산업 개발 모델에 의해 발생한 환경오염을 중단시키고 개선하는 것이다. 어떤 국가가 21세기 패권을 차지하든, 현 방식이 지속되면 지구는 고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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