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국제경제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잠식할 것인가

econtopia 2026. 3. 13. 22:12

1.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킬 것인가
지난 10년 넘게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킨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는 명제는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사이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급부상하면서, 시장의 내러티브는 역설적으로 "AI가 소프트웨어를 잠식할 것"이라는 공포(AI scare)로 급선회했다. 이러한 심리적 위축은 단순한 조정을 넘어 소프트웨어 섹터 전반의 가치 재평가(re-rating)로 이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성장성 대신 생존 가능성(survivability)을 핵심 잣대로 삼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북미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 120개를 추종하는 IGV ETF는 연초 대비 약 17% 하락했으며, 2025년 가을 고점 대비로는 26% 급락했다. 밸류에이션 또한 코로나19 당시 51배에 달했던 12MF PER도 현재 22배 수준으로 주저앉으며 201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오라클(Oracle), 세일즈포스(Salesforce) 등 상위 10개 종목에서 증발한 시가총액만 약 8,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현재의 하락세는 금리나 단기 수요의 문제가 아닌, 기업의 잔존가치(terminal value)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에서 기인한다. 투자자들은 AI가 기존 소프트웨어의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고 비즈니스 모델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담론을 넘어, 실제 비즈니스 모델이 파괴적 혁신의 파고를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정교한 전략적 진단이 필요하다.

2. AI와 소프트웨어의 상생 혹은 대체
전문가들은 AI가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겠지만, 기존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할 변화는 가히 '재건' 수준의 파괴적 성격이 될 것이라고 본다.

2.1. 가브리엘라 보르헤스: 기술 부채(Technical Debt)의 해결이 생존의 전제 조건
골드만삭스의 가브리엘라 보르헤스(Gabriela Borges)는 "AI는 곧 소프트웨어다"라고 정의한다. AI 역시 특정 과업을 수행하는 코드의 집합체이기에 전체 시장 규모(TAM)는 확대되겠지만, 코드 생성 비용의 하락으로 경쟁은 임계점까지 치솟을 것이다. 그녀는 기존 기업들이 AI 시대의 수혜를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 부채(technical debt)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과거의 무분별한 인수가 파편화된 데이터 구조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모든 데이터가 핵심 기술 백본(core backbone)으로 균일하게 흐르도록 통합하는 인프라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2.2. 릭 셜런드: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와 시장의 파편화
릭 셜런드(Rick Sherlund)는 현재를 1980년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elational database)로의 전환기에 비견되는 불연속적 전환(discontinuity) 시점으로 규정한다. 그는 기존 시스템에 AI 기능을 단순히 얹는 '볼트온(bolt-on)' 방식은 마케팅적 수사에 불과하며, LLM을 추론과 의사결정의 핵심에 둔 근본적인 아키텍처 재구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AI 에이전트가 기존 SaaS의 기능을 세분화하여 해체함에 따라, 시장은 더욱 파편화되고 신규 진입자들이 낮은 진입 장벽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기존 기업의 점유율을 침식할 것이라 분석한다.

2.3. 산제이 푸넨: '쓰나미'를 타고 넘는 이중 전략
산제이 푸넨(Sanjay Poonen)은 현 상황을 "서핑하지 않으면 휩쓸려갈 쓰나미"에 비유한다. 그는 생존의 핵심 지표로 사용자당 가격(price per user) 방어 능력을 꼽는다. 기존 핵심 제품의 가격 하락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모듈을 추가하거나, 엔지니어링 생산성 혁신을 통해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는 특히 "살고 있는 낡은 집 옆에 새 집을 짓는(living in an old house while building a new one)" 전략을 제언한다. 즉, 기존 시스템의 현금 흐름을 유지하며 동시에 AI 네이티브 시스템으로 완전히 이주할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의 방어 기제와 '해자(Moat)'의 실효성
신규 AI 진입자들의 거센 공세 속에서도 기존 기업들은 '시간 벌기'를 넘어선 강력한 전략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AI 네이티브 기업들이 쉽게 복제하기 힘든 진입 장벽을 형성한다.

3.1. 기록 시스템(System of Record)의 기술적 우위
ERP, CRM 등 기업의 중추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들은 강력한 해자를 가진다. AI가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하려면 고품질의 확정적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존 시스템에 축적된 데이터는 고유의 메타 컨텍스트(meta context), 정교한 데이터 라벨링(data labeling), 실시간 스트림 프로세싱(stream processing) 등 복잡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어, 단순한 API 추출만으로는 그 맥락을 온전히 복제할 수 없다.

3.2. 도메인 경험과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
특정 산업의 업무 흐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도메인 전문성은 AI의 신뢰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이 강력한 이유는 단순히 LLM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지식 노동자들의 협업 방식을 관찰하여 구축한 지식 그래프라는 지능형 레이어가 그 밑단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3.3. 해자의 시간 벌기 효과와 침식의 위험
복잡한 업무 흐름과 구축되어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는 기존 기업들이 AI 기술을 내재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하지만 릭 셜런드가 지적했듯, 이러한 해자는 영구적이지 않다. AI 기술의 진보는 이 견고한 장벽을 점진적으로 침식할 것이며, 특히 해자가 얇은 시장의 하단부(lower end)부터 파괴적 혁신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4. 시장 안정화의 조건: 이익의 안정성과 투자 전략의 전환
기술적 담론을 넘어 시장 참여자들이 신뢰를 회복하고 가치 재평가를 멈추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재무적 성과와 전략적 로드맵이 숫자로 증명되어야 한다. 

4.1. 이익 안정화 우선주의: 담배 및 신문 산업의 교훈
벤 스나이더(Ben Snider)는 구조적 파괴에 직면했던 과거 산업 사례를 통해 주가 안정화의 조건을 제시한다. 2000년대 초반 신문 산업과 1990년대 말 규제 및 소송 리스크에 직면했던 담배 산업의 사례를 보면, 주가는 파괴적 서사가 사라질 때가 아니라 이익 전망치가 실제로 안정화될 때 비로소 바닥을 다졌습니다. 현재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주가가 고전하는 이유는 미래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장은 내러티브가 아닌 숫자가 파괴적 서사를 부정할 때까지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할 것입니다.

4.2. 수익 모델의 진화: 성과 기반 과금(Price per Outcome)
전통적인 '사용자당 과금' 방식은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함에 따라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틱 ELA(AELA) 사례처럼, 사용자 수에 구애받지 않고 AI 에이전트가 창출한 실질적 가치와 성과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성과 기반 과금(price per outcome) 모델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격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가치의 정의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다.

4.3. 자산 배분의 변화: 실물 기반 자산(Real World Assets)으로의 복귀
AI의 파괴 위험으로부터 포트폴리오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자본 집약적(capital-heavy)이고 실물 자산에 기반한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통신, 산업재, 유틸리티 등 물리적 인프라를 보유하여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산업들이 기술주를 대체하는 피난처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산 배분의 변화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5. 결론: AI 시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생존 가이드라인
소프트웨어 산업이 직면한 현재의 위기는 종말이 아닌 대대적인 재탄생(rebirth)의 산고를 겪는 것이다. AI는 소프트웨어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능력을 무한히 확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기업과 혁신의 파도를 타는 기업 사이의 격차는 극명해질 것이다.

성공적인 생존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명확하다. 첫째, LLM을 핵심에 둔 과감한 아키텍처 재구축이다. 단순한 기능 추가를 넘어 시스템의 근간부터 추론 지능을 내재화해야 한다. 둘째, 기술 부채의 청산과 데이터 거버넌스의 강화다. 파편화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고유의 메타 컨텍스트를 보호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가 곧 해자가 된다. 셋째, 수직적 도메인 전문성의 심화다. 범용 AI가 넘볼 수 없는 특정 산업의 깊은 워크플로우를 점유하는 기업만이 가격 결정력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기존 기업들은 자신이 단순히 과거의 유산에 기댄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혁신적인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신규 진입자보다 더 나은 실행력을 보유했음을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투자자들 역시 기술의 공포에 압도되기보다는, 어떤 기업이 진정으로 AI를 자신의 핵심 아키텍처로 수용하여 새로운 S-커브 성장을 그려내고 있는지 선별적(selective)으로 접근하는 혜안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

  • Goldman Sachs, "Will AI Eat Software?", Mar. 10, 2026.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