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흥경제

대만 통화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경고

econtopia 2025. 12. 10. 19:21

1. 대만의 통화 약세 유도 정책

세계 각국이 대만의 첨단 반도체 칩을 대거 사들이면서 지난 5년간 칩과 서버 수출이 300%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대만은 올해 10월 GDP의 31% 수준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대만 경상수지(자료: 블룸버그)

 

일반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는 자국 통화의 강세 요인이며, 지속될 경우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위험이 발생한다. 이는 특정 수출산업의 호황이 통화가치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과 비제조업·내수 산업의 피해를 유발하는 현상이다.

 

대만은 이러한 부작용을 피해  중앙은행(CBC)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대만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지속해왔다. 빅맥지수에 따르면 대만 달러는 미국 달러 대비 55% 저평가되어 있으며,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53개국 가운데 가장 약한 통화다. 또한 PIIE의 윌리엄 클라인 박사가 고안한 펀더멘털 균형 환율(FEER, Fundamental Equilibrium Exchange Rate) 개념에 따르면, 경상수지 흑자를 GDP의 3% 이하로 만드는 환율이 적정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대만 달러는 2008년 이후 약 24% 절하된 상태로 평가된다.

 

2. 대만 달러 약세의 기회비용

대만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는 구조적 위험을 확대할 수 있다. 개방경제 국민소득 항등식에 의해 대만은 저축이 투자보다 과도하게 많은 국가이다. 실제로 대만은 GDP의 39%를 저축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42%)에 필적한다. 이는 곧 대만 가계가 충분한 소비를 하지 못하고 재정적으로 억눌려 있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은 수출기업을 돕는 대신 대만 사람들의 실질 생활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다. 대만 달러 약세는 수출기업에는 사실상의 보조금이지만, 국민에게는 생활비 상승과 구매력 악화로 돌아온다. 이는 저소득층이 수출기업 및 자본가를 사실상 부양하는 구조다. 그 결과 1998년 이후 노동생산성이 두 배 증가했음에도 같은 기간 단위노동비용은 25% 감소했다. 다시 말해, 대만의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몫이 축소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CBC의 저금리 정책은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는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현재 대만 부동산 가격은 1998년 대비 4배 상승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6배에 달해 런던이나 뉴욕, 서울을 모두 상회한다.

자료: The Economist

 

또 CBC의 외환시장 개입 방식 역시 금융 리스크를 누적시키고 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리스크를 고려해 CBC는 생명보험사를 통한 간접적 외환 축적 전략으로 선회했다. 대만의 생명보험 가입률은 매우 높아 평균 1인당 2개 이상의 보험을 보유한다. 보험사들은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금을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에 투자한다. 2012년 이후 대만의 해외자산 중 생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1%로 두 배 증가했다. 반면 CBC의 비중은 19%로 절반 줄었다. CBC는 외환스왑 시장에서 보험사의 환헤지 반대 포지션을 공급함으로써 보험사들의 해외투자 비용을 크게 낮춰주었다.

 

그러나 생보사는 자국통화 부채와 미국 달러 자산이라는 구조적 통화 미스매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CBC의 개입에도 환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만약 대만 달러의 가치가 급등하면 보험사의 해외자산의 가치는 줄어들지만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부채는 줄어들지 않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만 생보사가 떠안고 있는 무헤지(unhedged) 환위험은 약 2,000억 달러, 즉 대만 GDP의 25% 수준으로 추정된다. 대만 달러가 급격히 강세로 전환될 경우 보험사는 지급불능 상태에 처할 수 있고, 가계 저축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대만 생보사는 사실상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된 것이다. 

 

한편 대만은 중국의 외교적 견제로 IMF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통화 위기 발생 시 기댈 국제 안전망이 없다. 따라서 CBC는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통화를 약세로 유지하는 정책이 경제·안보 양 측면에서 필수적이라고 판단한다.

 

3. CBC를 둘러싼 문제제기

현재 CBC는 대만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관으로 평가된다. 관료들조차 CBC를 두려워한다. CBC의 권위주의적 특징은 대만의 정치·경제적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민당이 1949년 대만으로 후퇴한 이후 중국의 계엄령이 1987년까지 유지되면서 중앙은행은 국민당의 권위주의 체제의 핵심 기관이 되었다. 국민당은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까지 통제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기조는 오늘날까지도 잔존해 있다는 지적이 있다.

 

CBC는 대규모 외화 자산 운용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을 실현했고, 이 수익은 정부에 송금되어 정부 재정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중앙은행의 이전수입은 전체 정부수입의 6%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인 0.4%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구조는 CBC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다.

 

또한 CBC는 2021년 여러 외국계 은행의 통화 헤지 거래를 금지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는 외국계 금융기관을 위축시켰다. CBC는 지나친 중앙집중화라는 비판을 '근거 없다'고 일축하고 있으며, 대만 달러가 강세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듣지 않는다.

 

수출업체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통화 강세를 견딜 수 있지만 전체 제조업 고용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저부가가치 제조업체는 통화가치 상승시 큰 타격을 받는다. CBC의 정책은 이 취약 산업군을 보호하는 데 구조적으로 기여해 왔다.

 

그러나 CBC도 미국의 위협 앞에서는 취약하다. 지난 5월 미국 무역협상단이 대만 달러 절상을 요구했다는 소문만으로 대만 달러의 가치가 단 이틀 만에 9% 급등했다. 그 이후로 대만 달러는 서서히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만은 아직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상황이며, 대만 달러 가치가 무역협상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USD/TWD 추이

 

4. 결론

대만 반도체에 세계적 수요가 이어지는 한 대만의 무역흑자는 확대될 것이고, 이는 대만 달러에 구조적 강세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생보사의 통화 미스매치 리스크가 커지고, CBC는 더욱 강력하게 통화 약세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미국 협상단의 불만을 초래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만의 통화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대만이 경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마진 혹은 초저마진 기업은 점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고 생보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점진적 통화 절상이 필요하다. 대만의 낮은 정부부채(GDP 대비 23%)를 활용한 공공재정 투입으로 고용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출 호황의 과실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도록 경제 구조 조정 역시 절실하다.

 

참고:

  • The Economist, "Taiwan's amazing economic achievements are yielding alarming strains", Nov. 13, 2025. (link)
  • The Economist, "The hidden risks in Taiwan's boom", Nov. 13, 2025.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