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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절 워버턴, 《철학의 주요문제에 대한 논쟁》, 1995

econtopia 2025. 12. 31. 15:07

1. 총평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이 다루는 여러 주제 가운데 핵심적인 주제를 골라 관련 이론과 그에 대한 반박을 소개하고 있다. 신, 도덕성, 정치, 실재하는 세계, 과학, 마음, 예술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가 그것이다. 각 장에서는 '신은 존재하는가?'와 같이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법한 질문부터 '이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는가?'와 같은 난해하고 생소한 질문까지 다룬다.

 

각 주제별로 다양한 이론과 그에 대한 반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 어느 한 주장만 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이론을 둘러싼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다. 또한 논증과 반박의 과정을 통해 어떤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태도 또한 기를 수 있다. 비록 명쾌한 논증이라도 철학적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논증을 접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철학의 주요 주제를 개괄할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였다. 물론 인식론이나 존재론 파트를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수천 년에 걸친 철학자들의 사유를 쉽고 간략하게 재구성한 형태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크나큰 장점이었다.


2. 신은 존재하는가?

유신론자들이 말하는 신은 유일하며, 전지·전능하고, 지선(至善)하다.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시도해 왔으나, 그 수많은 논증은 다양한 비판에 부딪혔으며 어떠한 증명도 신의 존재를 완벽히 정당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신의 존재 증명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에 역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논증도 개발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악의 문제'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잔혹한 행위를 의미하는 도덕적 악(moral evil)과 자연재해와 같은 자연적 악(natural evil)이 존재한다.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지선하다면 이러한 악의 존재를 방치할리 없다. 

 

유신론자들은 이 악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반론을 통해 대응해 왔다. 예컨대 악이 전체적인 선에 기여한다거나,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주장, 혹은 기적에 기초하는 논증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지선하다면 악의 존재를 그대로 방치할 리 없다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에 관한 비실재론은 전통적인 유신론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 준다. 신을 인간 존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바라보는 대신, 종교적 언어를 우리의 도덕적·정신적 가치의 이상적 통일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종교를 믿는 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도덕적·정신적 목표에 대해 믿는 것이고 이는 윤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비실재론은 종교인 입장에서 볼 때 신의 부재를 철학적 수사로 포장하는 비겁한 주장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합당한 설명 없이 신앙만으로 신을 믿는 행위는 자칫 자신의 판단을 맹목적으로 신앙에 위탁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믿는 신앙이 적절한지를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길러야 하며, 유신론이 전제하는 신의 속성 중 일부를 재검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다루는 분야가 도덕철학이다. 도덕철학은 크게 의무에 기초한 이론과 결과주의적 이론으로 나뉜다. 의무에 기초한 이론은 다시 기독교 윤리학과 칸트 윤리학으로 구분된다. 칸트 윤리학에서 도덕적 행위란 의무의식에서 비롯되어 수행된 행위이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는 동기에 집중했는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위의 동기이지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결과주의에서는 행위자의 의도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 기초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공리주의는 이러한 결과주의 윤리 이론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형태다. 공리주의는 모든 인간 행위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가정에 기초하며, 이러한 입장은 쾌락주의로 불린다.

 

그런데 의무론과 공리주의 모두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저자는 규칙 공리주의(rule utilitarianism)를 두 이론의 장점을 결합하려는 시도로 제시한다. 규칙 공리주의는 개별 행위의 결과를 매번 계산하기보다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낳는 경향이 있는 행위 유형에 대한 일반 규칙을 채택한다. 그 결과 도덕적 판단 상황에서 복잡한 계산을 줄일 수 있다는 커다란 실천적 이점을 갖는다.

 

4. 내가 보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가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탐구하는 분야를 지식론(theory of knowledge) 또는 인식론(epistemology)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지각 이론에 중점을 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그 결과 우리가 보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을 상식적 실재론(commonsense real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식적 실재론은 다양한 회의적 논증에 의해 간파된다. 대표적으로 르네 데카르트가 쓴 《성찰》에 나오는 코기토(Cogito) 논증이 있다.

 

대표 실재론(representive realism)은 상식적 실재론의 변형이다. 외부 세계의 대상은 제1성질만을 가지나 그것을 지각하는 사람들은 제2성질을 생산하고, 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감각과 실제 세계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려는 시도가 관념론(Idealism)이다. 관념론은 외부 세계가 존재한다는 정당성은 없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경험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관념론은 유아론(solipsism)으로 귀결되거나 물리적 대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현상론(phenomenalism)은 관념론과 달리 물리적 대상을 현실적이거나 가능한 지각 경험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역시 관념론과 마찬가지로 유아론으로 빠지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인과 실재론(casual realism)은 감각 경험의 원인은 외부 세계의 물리적 대상들이라고 가정한다. 그 물리적 대상은 우리가 지각적 신념을 습득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인과 실재론은 우리의 감각기관은 환경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기존 지식이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지각 이론으로 평가된다.

 

5. 과학에서 반증주의적 접근법은 옳은가?

과학적 방법론에서 반증주의란 어떠한 이론도 절대적으로 참일 수는 없으며, 모든 이론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증 가능성은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만약 어떤 이론이 반증될 여지조차 없다면, 더 좋은 이론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결국 과학적 진보 역시 정체될 것이다.

 

그러나 반증주의는 과학사의 중요한 발전 중 많은 것들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당시 수많은 반증 사례가 존재했음에도,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주와 관련된 이론의 발전은 단순히 추측과 반박의 과정을 따라 발생하지 않았다. 수 세기가 지나서야 관측을 통해 이론이 제대로 검증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증주의적 접근법이 과학적 방법론에서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6. 몸과 마음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질주의는 정신적 사건을 물질적 사건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심신 이원론과 달리 과학적으로 이론적 뒷받침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을 가진다. 유형 동일론(type-identity theory)은 정신적 사건이 물질적 사건과 동일하다고 본다. 즉 이 두 사건은 동일한 두뇌 상태를 가리키는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서로 다른 개임들이 정확히 동일한 유형의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하는데, 이를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개별자 동일론(token-identity theory)은 모든 사고는 특정 두뇌 상태와 동일하다고 말하나, 유형 이론과 달리 동일 유형의 사고라고 해서 모두 동일 유형의 두뇌 상태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특정 유형의 사고의 개별자들이 반드시 정확하게 동일한 유형의 물질적 상태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때 유형을 종(species)이라 한다면, 개별자는 이 종의 개별 사례라고 비유할 수 있다.

 

한편 행동주의자는 마음의 존재를 부정한다.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기술하는 단순화된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행동주의는 감각질을 설명하지 못하고,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한 사람의 신념이 그들의 행동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기능주의는 하나의 정신 상태를 다른 정신 상태와의 관계, 그리고 그것이 행동에 미치는 결과로 정의한다. 그러나 기능주의 역시 의식 경험과 감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중국어 방' 사고 실험에 참여한 사람처럼 '참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한 채 그것을 기호들을 조작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7.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비평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가족 유사성 개념을 사용해 예술은 단일한 정의로 규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의미 있는 형식 이론,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마음에 있는 관념이라고 보는 예술 관념론, 누군가가 어떤 작품을 예술로 취급하면 예술이 된다는 예술 제도론 등 다양한 이론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물론 이렇게 예술을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치명적인 반론에 부딪친다. 따라서 예술을 정의하는 방법 각각은 모두 한계를 지닌다.

 

예술작품을 비평할 때 예술가의 의도를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반의도론자들은 작품 자체에 구현된 의도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작품 외적인 요소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예술 작품이 생성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예술은 하나의 정의로 포괄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따라서 각각의 예술작품은 그 특성에 맞는 개별적인 해석과 비평을 필요로 할 것이다. 예술 감상에는 개인적 경험과 주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정의와 해석 방식에는 느슨하지만 일정한 방향성이 존재하며, 예술철학은 이러한 사고의 확장을 뒷받침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