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주인공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일반적인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요조는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로서 익살짓을 하게 된다. 도쿄로 상경한 이후 인간에 대한 공포를 감추기 위해 미술학원에서 만난 호리키와 함께 술, 담배, 여성, 좌익 활동 등에 빠져들게 된다. 이 활동을 하면서 본인의 추악한 인간성에 대한 혐오 감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요조는 세상으로부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한 유부녀와 물에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시도하나 홀로 실패한다. 이후 아이 딸린 과부에 이어 바의 마담과 불안정한 동거 생활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요시코라는 순결한 여자와 결혼을 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던 찰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증오감이 다시금 살아났다.
이후 마약에 중독된 요조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고향 근처에 자리잡은 요조는 폐인이 된 채로 하루를 의미없이 살아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2. 감상
주인공은 타인에게 익살을 떨면서 본인의 본모습을 감추면서 살고 있다. 공산주의 연구회에 출석하고 비합법적인 일을 하는 일, 이것이 그가 인간 세상으로부터 얻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방법이었다.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서로 다르게 보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라고 하고, 평생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이것이 그가 인간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인간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사람 간 관계를 맺음에 있어 상호신뢰가 전제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우리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비관론에 빠져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본인에 대한 자기혐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주인공에 대한 마담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마담은 주인공에 대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요짱은, 너무나 순수하고, 재치가 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야 마셔도...... 신을 닮은 선한 애였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워 술을 한 컵을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편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다른 사람이 바라본 주인공은 한없이 순수하고 재치가 있는, 선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부분을 읽고 울컥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 불안과 우울이 판을 치는 시대에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순수한 사람이 있기에 우리 인간 사회에 마음 둘 곳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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