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에서 증권업에 몸담기 위해 동부로 와 웨스트에그에 정착한다. 그는 웨스트에그보다 화려한 이스트에그에 사는 먼 사촌 데이지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을 다시 만난다. 톰은 닉과 같은 예일대 동문으로 대학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데이지의 집에서 닉은 골프 선수 조던 베이커를 소개받고, 조던으로부터 톰이 뉴욕에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뒤 톰은 닉에게 자신의 애인인 머틀 윌슨를 소개시켜 준다. 머틀은 가난한 정비공 조지 윌슨과 결혼했지만, 남편이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닉의 옆집에는 매주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 개츠비의 저택이 있었다. 어느 날 개츠비에게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닉은 그곳에서 개츠비와 친해진다. 개츠비는 자신을 중서부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며 옥스퍼드에서 공부했고, 가족이 돌연 세상을 떠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이는 꾸며낸 이야기였다. 실제로 개츠비의 본명은 제임스 개츠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젊은 시절 동부 해안에서 댄 코디를 만나 그의 비서로 일하며 상류 사회를 접했지만, 유산을 물려받지는 못했다. 이후 개츠비는 밀주업과 같은 불법 사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닉은 조던을 통해 개츠비가 과거 데이지의 연인이었으며, 그녀와 재회하기 위해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웨스트에그의 저택을 사고 파티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닉의 도움으로 마침내 두 사람은 재회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톰과 개츠비 사이에서 갈등한다. 시내의 호텔에서 톰과 개츠비는 데이지를 두고 격렬하게 대립한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그녀가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길 요구한다. 그러자 톰이 개츠비가 밀주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폭로한다. 데이지는 확신을 내리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데이지는 개츠비의 차를 몰고 가다가 머틀을 치어 죽이고 만다. 개츠비에 따르면 운전자는 데이지였지만 개츠비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운전했다고 책임을 떠맡기로 한다.
분노한 윌슨은 톰에게 사실을 묻자, 톰은 차의 주인이 개츠비라고 떠넘긴다. 결국 윌슨은 개츠비를 찾아가 총으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람들로 가득하던 파티와 달리 개츠비의 장례식은 쓸쓸하게 치러지고, 닉만이 그를 진정으로 추모한다.
2. 감상
개츠비에게 왜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덕과 법이 무너지고, 돈과 출세만을 좇는 물질주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개츠비는 끝내 순수한 사랑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살았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속물적이고 무책임한 인물임을 간파했음에도 데이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고, 그녀를 향한 사랑을 숭고한 가치로 여기며 인생을 걸었다. 그 마음 자체가 당시 뉴욕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낭만이었기에, 그에게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같다.
소설 속 개츠비와 뉴욕 사람들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데이지는 개츠비의 집에서 화려한 셔츠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물질적 풍요에 감격하는 그녀의 속물적 시각을 드러낸다. 개츠비가 죽은 뒤 데이지를 비롯한 그 누구도 장례식에 오지 않는 장면은 당시 상류층의 냉혹함과 위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개츠비를 뒤에서 밀주업자라며 수군거렸지만, 정작 그의 파티에 모여 술을 즐기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개츠비 역시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부를 쌓은 신흥 부자를 대표했다. 그리고 데이지가 속한 올드 머니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갈망했지만 그 꿈은 끝내 좌절된다. 이는 신흥 부자와 올드 머니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드러내며 아메리칸 드림이 몰락해 가는 풍경을 비춘다. 더 나아가 소설은, 도박이나 밀주 같은 불법적 수단으로 성취된 부와 성공이 과연 자랑스러운 가치일 수 있는지, 즉 아메리칸 드림 자체가 자랑스러운 가치인지에 대한 냉소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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