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문법학자 페르난도는 오랫동안 고국을 떠나 있다가 콜롬비아로 돌아온다. 그는 친구 호세 안토니오의 소개로 청부 살인과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알렉시스를 만나게 된다. 알렉시스는 페르난도의 애인이 되어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메데인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메데인에 있는 수많은 성당을 방문해 성모에게 행복을 비는 기도를 올리는 순례를 계속한다. 알렉시스는 거리를 거닐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페르난도는 사람을 죽이는 알렉시스를 오히려 천사라고 생각한다. 한편,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청부 살인자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자주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함께 산지 일곱 달쯤 되었을 무렵, 어느날 오후 플라야 대로에서 알렉시스는 총에 맞아 죽는다. 페르난도는 알렉시스 생모의 집에서 그를 죽인 범인의 이름을 전해 듣는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는 한 거리에서 윌마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윌마르 역시 청부 살인자였다. 페르나도는 윌마르와 같이 살며 알렉시스와 함께했던 것처럼 메데인 거리를 돌아다니며 살인을 반복한다.
그러던 중 페르난도는 우연히 지인인 '종결자'라고 불리는 에이데르 안토니오와 만나게 된다. 그는 윌마르가 알렉시스를 죽인 범인이라고 말해준다. 페르난도는 순간적인 복수심에 윌마르를 죽이고 싶어지지만, 복수는 더 이상 명예로운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신 윌마르와 콜롬비아를 떠나기로 한다. 페르난도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올 윌마르를 기다리지만, 새벽 무렵 윌마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 역시 누군가의 원한으로 인해 살해당한 것이다. 두 명의 애인을 잃은 페르난도는 홀로 순례를 계속한다.
2. 감상
이 소설은 콜롬비아의 암울한 현실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다. 화자인 페르난도는 자신의 여정을 독자와 공유하면서 마약과 폭력, 청부 살인이 일상이 된 메데인 사회의 실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도시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사람이 살해될 수 있으며, 살인이 반복되어도 누구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러한 불안과 폭력에 잠식된 도시의 풍경 속에서 화자는 처음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겠지만 나중에는 냉소적으로 바뀌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인지, 페르난도는 콜롬비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극단적이다. 해결책이 없는 사회라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며, 이곳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 그는 청부 살인자의 무차별적인 살인 행위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나아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죽임으로써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부조리한 주장까지 펼친다.
저자는 페르난도의 진술을 빌려,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든 진짜 살인자는 개인이 아니라 권력자라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동시에 성직자에 대한 날선 비판도 이어진다. 일부 성직자는 가난한 이들을 구제한다는 명목 아래 마약 밀매상과 결탁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등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주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살인과 마약 밀매가 끊이지 않는 아이러니가 지속된다.
페르난도가 어렸을 때 사바네타의 성모는 카르멜산의 성모였지만 돌아와 보니 도움의 성모로 바뀌어 있다. 교회의 정책과 전략에 따라 성모의 이름마저 변한다는 사실은 종교의 세속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혼돈의 도시를 관찰하던 페르난도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악마'라고 말한다. 이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정권과 종교는 그 명분이 무엇이든 결국 악의 편이라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 인상적인 구절을 소개하며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작가는 다음의 구절을 통해서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왜곡된 정의와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운동화 한 켤레 때문에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있을까? (중략) 그건 운동화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믿는 정의의 원칙 때문이야. 운동화를 도둑맞은 사람은 자기가 운동화값을 냈으니 그걸 빼앗기는 건 부당하다고 여길 거야. 반면에 그걸 훔치려는 사람은 그 운동화를 갖지 못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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