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소설

정해연, 《누굴 죽였을까》, 2024

econtopia 2026. 1. 3. 16:49

1. 줄거리

9년 전, 삼인방이라고 불리던 홍원택, 허필진, 오선혁은 자신들의 동네 월선면으로 야영을 온 한 고등학생에게 겁을 주다 그만 죽게 한다. 학생의 지갑에서 발견한 이름은 백도진이었다. 이들은 시신을 야산에 묻은 뒤 이 일을 평생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다. 이후 세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원택이 살해된다. 그의 입에서 발견된 쪽지에는 '9년 전 너희 삼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혁은 9년 전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복수를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이후 필진마저 같은 범인에게 살해되고 만다. 선혁과 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차열은 각각 이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삼인방이 백도진이라고 알고 있던 인물은 사실 이승훈이었고, 그는 백도진의 협박으로 심부름을 하다 우연히 삼인방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은 피해자였다. 이승훈의 아버지 이병춘 씨는 일을 그만두고 아들을 찾아 나섰고, 동생 이승주는 집의 빚을 갚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승주는 병춘이 자신을 찾아낼 것을 염려해 술집 주인의 명의를 빌려 이자희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성형수술로 외모까지 바꾼다.

 

술집에서 일하던 승주는 우연히 술에 취한 원택으로부터 9년 전 사건을 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선혁의 이름을 알게 된다. 승주는 의도적으로 선혁에게 접근해 연인이 된 뒤, 그의 휴대전화 케이스에 도청기를 설치해 오빠의 죽음에 연루된 공범들을 추적한다. 결국 승주는 병춘과 함께 원택과 필진을 살해한다. 병춘은 승훈을 괴롭혔던 도진을 직접 살해한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병춘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머지를 승주에게 맡긴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선혁은 극심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경찰에게 알린 뒤 승훈이 묻힌 장소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 감상

'누굴 죽였을까?'라는 제목에 걸맞는 소설이었다. 초반부에서는 백도진이라는 인물이 누구이길래 9년이 지난 이제서야 복수가 시작되는가라는 의문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중반부에 이르러, 죽은 사람은 백도진이 아니라 이승훈이었으며, 그의 죽음이 한 개인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아버지와 동생의 인생까지 파괴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삼인방이 9년 전 죽인 것은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었다.

 

이미 중반부터는 사건을 둘러싼 대부분의 조각들이 이미 끼워맞춰진다. 그렇기에 추가로 더 읽어나가는 과정은 이미 유추하고 알아낸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선혁과 차열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각자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두 인물이 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해 몰입감을 유지했다.

 

이 작품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이 지닌 무게를 그려냈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으며, 남겨진 이들의 삶을 연쇄적으로 파괴한다. 선혁은 자신과 연인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자기변호의 끝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선택은 시간이 지나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