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하면 흔히 산타, 트리, 캐럴을 떠올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데 있다. 그런데 어느새 크리스마스에서 예수는 사라지고 산타와 트리가 주인공이 된 듯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광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싼 시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자 《한겨레》에 실린 논평의 내용이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는 십자가 장식이 달려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데, 예수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십자가는 예수를 처형한 형틀이었으니 생일 잔치에 단두대나 교수대를 가져다 놓는 격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십자가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됐으니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서의 십자가는 아기 예수를 표상한다기보다 제도화된 교회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비유하자면, 아이돌의 생일을 기념하는 팬덤 광고에서 정작 스타보다 팬클럽의 로고를 더 크게 내세우는 것과 비슷하다.
크리스마스가 현대 세속국가에서 공휴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신격화 여부와 무관하게 인류가 존경하는 한 성인의 탄생을 함께 축하한다는 데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광장 트리 위 십자가 장식은 크리스마스를 특정 종교, 특히 개신교의 행사로 한정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래 서울광장의 트리 위에는 별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선언한 이명박 시장이 취임한 2002년부터 광장의 트리에 십자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명박은 트리 설치를 개신교 방송사인 CTS기독교TV에 위탁했고, 당시에는 개신교 교회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네온 십자가가 사용됐다고 한다. 이후 오세훈 시정 2기인 2021년부터 지금의 약간 구부정한 노란색 십자가로 바뀌었다. 이 모양은 CTS기독교TV 로고의 십자가와 상당히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서울광장의 크리스마스는 이명박 시기에는 특정 종교에, 오세훈 시기에는 특정 종교에 이어 특정 방송사에 사실상 점거된 셈이다.

우리나라는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 공간이 되어야 할 서울광장은 서울시장의 결정으로 특정 종교와 특정 방송사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그 결과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는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십자가가 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트리 설치를 맡은 CTS기독교TV는 특정 종교나 방송사를 연상시키는 상징을 사용하기보다는 크리스마스의 본래 의미와 공공장소의 성격에 부합하도록 장식을 재정비하기를 바란다.
참고:
- 한승훈, 〈서울광장 십자가 트리의 기괴함〉, 《한겨레》, 2025. 12. 8.(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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